Philosophy

[Talk] 왜 디자인은 기술을 이해해야 하는가

De-v-signer 2024. 11. 11. 00:08

기술적인 매커니즘이나 로직을 이해하려 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는 반면, 그 쪽은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벽을 쌓고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이 둘 중 어떤 쪽이 옳으냐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일 것이다. 이는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 적성, 동기 뿐 아니라 업무의 세부 분야나 조직의 구성 등에 따라서도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려다가 역효과가 날 수도 있고 조직에 속한 경우나 주어진 업무의 성격, 범위에 따라 디자이너가 기술까지 알려 하기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디자인이 기술을 이해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 개인의 케이스는 세세한 사정에 따라 답이 달라지지만, 거시적이고 일반적인 경우를 묻는다면 이해도가 있다면 디자인과 개발 양 측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은, 생산품(product)의 구체적인 계획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이다. 디자인이라고 하면 시각적인 미화(beautifying)의 역할이 강조되고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로 디자인(design)의 핵심적인 역할은 그것과는 다르다. 디자인을 보통 '기획'으로 번역하며 그 둘이 혼용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기업에서 이 둘을 구분하는 것과는 별개로 원래 디자인은 언어적인 정의(concept definition)부터 시각적인 구현 계획(visualization)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구현 계획에서는 출발보다 끝까지 끌고가는 세밀함이 더 중요하다.

즉, 디자인은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위의 '디자인이 기술을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이에 대응하면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려면 기술을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전자의 다소 모호한 질문과는 달리 후자의 질문은 분명하다. 그 답은 보편적으로 'YES'일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만들어질 대상과 그 방법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을 때 그 안에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면, 당연히 그 계획은 끝까지 현실의 문제를 뚫고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를 뚫고 나가려면 사업 내부의 강력한 지원과 기술진의 열의, 그리고 역량이 뒷받침 되어야 하나 이 또한 일말의 현실성을 가졌을 때의 이야기이고 이러한 지원과 열의, 역량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만나면 너무나 좋지만, 만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는 뜻이다.

때문에 디자인은 스스로를 무장하고 보호할 준비가 되어야 하며, 실현 가능한 구체성을 가진 청사진으로 계획을 성공시켜 나가야 한다. 성공의 누적은 위에서 말한 사업 내부의 강력한 지원이나 기술진의 열의를 끌어내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도전적인 계획도 제시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한편으로, 디자인에게 중요한 것이 쓸수 있는 재료를 파악하고 그 재료들과 목적을 어울러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기술은 이 상황에서 중요한 재료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 즉, 디자인은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더 많이 앎으로써 소비자의 관심을 끌거나 목적한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이왕이면 비슷한 방식의 표현 상황에서 기술을 통해 어떤 강조점을 줄 수 있다면 더 강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기술은 이러한 소재와 재료 측면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구별하기가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기술의 발전은 디자인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과정이나 디자인 도구들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이러한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손그림에서 CAD로, CAD에서 더 복잡한 렌더 기술로 발전해온 기술은 이제까지보다도 훨씬 더 혁신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그러하였듯,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구분할 수 없는 복합적인 작업이 점차 이뤄질 것이며, 엔지니어링 베이스의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 베이스의 엔지니어가 수없이 등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될 지 모른다. 물론 어떤 시대에도 전통이 사멸하거나 본질이 없어지리라 보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표면 상으로는 수없이 많은 파도가 칠 것은 사실이다. 이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디자인은 기술을 어느 정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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