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개념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단순 노동자 부터의 일자리 소멸'을 예상했었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고차원적인 개념이해나 발상은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고, 비교적 단순한 노동을 모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은 미학이나 창의적인 측면이 많아 기계학습으로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곤 했다.
그러나 기술의 변화로 인공지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인식의 양상은 달라졌다. 실제로는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나 쉬운 걷기, 물건 집기, 옮기기 등은 기계에게 너무나 많은 조작과 섬세한 변수 제어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오늘날 거의 전산 위주로 이뤄지던 지식 노동은 오히려 기계의 영역이었기에 '어떻게 하는 건지' 학습만 이뤄지면 쉽게 처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역시도 이러한 '기계가 처리하기 쉬운' 지식 노동의 범주를 넘지 못했는데, 미학이나 창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각종 요소들을 습득하면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의 결과물을 내는 것은 가능할 뿐더러, 반복해서 만들다보면 목표에 상당히 일치하는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 역시도 수많은 시안을 토대로 쓸만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비록 그 본질은 다르더라도, 비용의 측면에서 봤을 때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창작에 있어서 거의 비슷한 비용을 소모하면서 다른 부대비용이 극심히 저렴하고 인적인 관리비용은 전혀 들지 않는 인공지능은, 이렇게 디자인이라는 영역 마저도 직접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디자인이라는 영역에서의 비평이 취향이라는 요소가 크게 반영되는 측면이 있고 디자인 사용자, 고객들이 스스로도 꽤 경험치를 가지는 분야인 만큼, 이들이 직접 간단한 명령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툴이 등장했다는 점은 기존의 질서를 꽤나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디자인 전문가가 절멸하거나 하는 일은 절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다른 지식노동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디자인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상당히 파괴적이고 뛰어난 성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이면의 본질은 매우 다르며 어디까지나 창작의 모습을 취하는 편집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의 결과물을 평가하는 것은 인간일 수 밖에 없다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 때문에 이들을 이끌고 관리하는 최종 디자인 관리자는 존재해야 하며 이러한 구조는 바뀔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단순 지식 노동자'로서의 디자이너들은 매우 위험할 수 밖에 없다. 기계가 가장 잘하는 것은 계산과 반복이기 때문이다. 단순 지식 노동자들은 이 기계의 가장 뛰어난 역량과 정면 대결을 펼치는 그림이 되어갈 텐데, 누구도 기계보다 따르게 계산하여 반영하거나 기계보다 더 많이 반복하여 시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행히 살아남는 방법 역시도 이것에서 찾을 수 있다. 계산과 반복을 강점으로 가지지 않고, 기계가 이해하기 어려운 진정한 창작과 직관의 매커니즘을 더 깊이 연구하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공생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보다, 인공지능과 기계에 대해 이해하여 그들이 뛰어난 점과 부족한 점을 이해하면 이외에도 더 많은 강점을 찾아 인간을 무의미한 노동에서 해방하는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기계로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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